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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장마였다. 가류 키리히토가 수감된 지 4개월, 그리고 콘서트의 살인사건 이후로 한 달이 조금 지난 8월의 어느 날. 장마를 맞은 하늘에서는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불이 꺼진 사무실, 쿄야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마지막 남은 서류를 정리하며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벽에 걸린 앤티크 풍의 화려한 시계는 배터리가 다 된 듯 10시에서 멈춰있었다. 잠시 그것을 의아한 눈으로 응시하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5시, 뭘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쿄야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위로 여덟 살이나 차이 나는 형제가 변호사 뱃지를 달고 개업한 지 꽤 많은 시일이 지났으나, 쿄야가 실제로 그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언젠가는 한 번쯤 들르게 되리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것이 형제가 범죄자로서 교도소에 수감되고, 그 뒷수습의 일환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죄목은 살인, 쿄야는 처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사건의 진실성을 의심했으며, 이어서는 고발자에게 악의를 의심했다.
4개월, 쿄야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4개월이 걸렸다. 1년의 3분의 1, 쿄야는 그 4개월간 그 의심을 걷어내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죽은 이의 신원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사건 기록을 몇 번이나 들춰보았다. 수감된 형제의 사무실도, 원래 지내던 집도 처분하지 않은 채 수시로 들락거리며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겨우 스물 하고도 두 살 많은 변호사, 혈육을 고발한 남자와 두 번의 재판을 함께하고 나서야 그에 대한 의혹을 걷어낼 수 있었다.
가류 키리히토는 정말로 사람을 죽였다.
그가 무슨 연유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결론은 단순했고 진실은 잔혹했다. 의심을 걷어내고 남은 자리엔 강렬한 허무함과 배신감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엔 차가워진 머리와, 그간 외면한 또 다른 의혹 만이 질척하게 쿄야의 발 아래에 고여 있었다.
쿄야는 그제야 자신에게 남겨진 형제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역시 그것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업자들이 대부분의 가구를 빼간 사무소는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남은 것은 소장실에 자리한 책상 하나, 전기포트와 파쇄기 같은 자질구레한 전자제품, 그리고 가류 키리히토가 쌓아올렸던 승리의 기록, 이제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서류들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경찰의 범죄 수사 기록과 같은 내용이기에 아무렇게나 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쿄야는 괜시리 그것을 들춰보고, 하나하나 파쇄기에 집어넣었다. 종이가 잘게 잘려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바로 직전에 있었던 콘서트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의 뒷수습 따위를 생각했다.
이곳에 오면서 사온 커피는 이미 얼음이 녹아 미지근해져 있었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무래도 좋은 고민을 흘려보내며 다른 서류 뭉치를 들춰보고 있자니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바이크가 아니라 차를 가져온 것에 안도를 느끼며 내다본 창밖 거리에는 회색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선명한 붉은색.
※이어지지 않는 내용입니다
“..누구와 좀 닮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거치기 전에 먼저 뛰쳐나간 말이었다. 생뚱맞게 앞뒤를 잘라낸 말에 라미로아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쿄야를 보고만 있었다. 괜한 소리를 했다 싶었다. 그 역시 오도로키 호스케와 개인적인 친분 정도는 있는 관계였고, 그랬기에 먼 보르지니아에서 장례식까지 참석했을 터였다. 허나 죽은 이를 닮았다는 말을 그 누가 반긴단 말인가.
짧은 생각 속에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쿄야가, 상대방이 누구 이야기냐고 묻기 전에 입을 열어 사과를 건네려던 참이었다. 기분탓이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반 박자 빨리 아, 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마치 쿄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군요, 가류 씨는... 아직 모르시겠군요."
"네?"
입을 떼기 전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그는 무엇을 기도하는가, 아니면 참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과거 쿄야는 그 모습에서 성모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숭고하고 신성하고 아름다운, 어떤 우상과도 같은. 물결치는 바다와도 같은 눈동자가 긴 속눈썹에 덮이며 옅은 슬픔에 잠긴다.
※이어지지 않는 내용입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거야.”
“그건,” 호스케가 고개를 들었다. 어물거리는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한걸까.
손을 뿌리친 것인가, 식사 자리를 멋대로 뛰쳐나간 것인가, 아니면 가류 쿄야에게 연심을 품은 것 그 자체인가. 쿄야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떨리는 주먹을 감싸 잡았다.
그를 만난 지 2년이 흘렀다. 소년 같은 얼굴은 그가 24세라는 나이가 되고서야 조금 더 청년에 가까워진 것 같아 보였다. 그저 변호사로서의 연륜이 얼굴에 묻어나기 시작한 것일 뿐인 지도 몰랐다.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던가. 안 그래도 잘 익은 감자 같던 얼굴이 한층 더 달아올랐다.
“...나랑 안 볼 생각이기라도 했어?”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운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쿄야가 그렇게 말하자 호스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연애감정이 있는가 어떤가를 제쳐두고라도, 호스케는 쿄야의 유일한 라이벌이었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였다. 그래, 비록 변호사와 검사라는 갈림길을 걷고 있을지언정 그 끝에는 진실이라는 같은 목표가 자리한 동료. 그렇기에 쿄야는 호스케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나도 오데코군이 좋아. 그게 네가 나에게 품은 감정과 같은지 아닌지, 그건 아직...잘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가류 쿄야는 더 신중하고 싶었다. 지금 놓치고 싶지 않다는 둥, 너라면 괜찮다는 둥 어중간한 대답은 시일이 지날수록 관계를 망칠 뿐임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눈앞의 남자가 이것을 이해할지, 그뿐이었다. 호스케는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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